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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3한강교(한남대교) 3가지 이야기서울/서울공부 2019. 2. 13. 23:05
제3한강교(한남대교)
3가지 이야기
한남대교는 강남 최초의 한강다리이며
그 중 가장많은 통행량을
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.
'강남의 탄생' 이라는 책에서
한남대교와 관련하여
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적어보고자 합니다^^
#1 전쟁 시 피난을 위한 다리
서울시가 한남대교를 건설하게 된 이유는 군사적 필요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.
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건널 수 있는 다리는 한강대교(제1한강교)와 광진교 2개 뿐이었습니다.
그리고 전후 건설된 양화대교(제2한강교)-1965년-는 전시에 군사용으로만 쓰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.
그리고 1965년 즈음 서울인구는 약375만명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약 150만명의 2배 이상이 되었고
시민들은 또다시 북한이 남침하게 되면 다리 2개로 어떻게 피난을 가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.
즉, 혹시 또 발생할지 모르는 전시 상황에 대비하여 1966년 한남대교(제3한강교)의 건설이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.
#2 원래는 왕복4차로 계획
한남대교는 원래 폭20미터, 왕복4차로로 설계되었으나
공사가 3달 정도 진행되었을 때 폭26미터 이상, 왕복6차로로 확장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.
당시 우리나라 전체 차량대수에 비해 왕복 6차로는 너무 넓은 폭이었지만
갑자기 건설계획이 변경되게 된 일화는 바로 북한때문이었다고 합니다.
비슷한 시기에 건설 중이던 평양의 다리 폭이 25미터로
평양의 다리보다 조금이라도 더 넓게 건설하려는 경쟁심리가 있었다고 합니다.
그 덕분에 폭발하는 교통량을 조금이나마 감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.
한남대교는 나중에 6차로의 다리가 하나 더 놓이게 되어 지금은 왕복 12차로,
서울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다리가 됐습니다.
#3 혜은이의 <제3한강교> 가사
혜은이의 <제3한강교>라는
유명한 노래가 있는데
처음에 금지곡이 되는 소동을 겪었다고 합니다.
♪어제 처음 만나서
사랑을 하고
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
이 밤이 새면
첫차를 타고
이름모를 거리로
떠나갈 거에요♪
이 가사 때문이라고 하는데
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만
당시에는 "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"가
마치 원나잇스탠드처럼 너무 선정적으로
여겨졌다고 합니다.
♬어제 다시 만나서
다짐을 하고
우리 둘은 맹세를 하였습니다
이 밤이 새면
첫차를 타고
행복어린 거리로
떠나갈 거에요♬
결국 이처럼 가사를 바꿔서 금지곡에서 풀려났다고 합니다.
참조 : 강남의 탄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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